해방전:1905년~1929년
1905년 | 09월 | 관부연락선(부산↔시모노세키) 취항 |
11월17일 | 한일협약(제2차・'을사조약') 외교권 박탈 | |
12월21일 | 일본, 한국총독부 설치, 초대총감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
1906년 | 11월05일 | 도쿄조선기독교청년회 결성 |
1907년 | 06월29일 | 헤이그 특사 사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국제회의에 호소하기 위해 고종황제가 사절단을 파견 |
07월24일 | 한일협약(제3차) 군대 해산, 경찰권 박탈 | |
1909년 | 10월26일 | 안중근, 하얼빈역에서 이토우 히로부미 사살 (1910년3월25일 여순=旅順 감옥에서 사형 집행) |
1910년 | 08월22일 | '한국병합조약' 체결 조선총독부 설치(8월29일) 초대 총감에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
09월30일 | 토지 조사 사업 개시(~1918년12월) 자소작농의 이농 현상, 도일 시작됨 | |
1911년 | 10월27일 | 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 결성(1914년4월 '학지광=学之光' 창간) |
1913년 | 10월28일 | 내무성 '조선인 식별 자료에 관한 건'을 각 부현에 송부, 재일조선인 감시 강화 |
1914년 | 07월28일 | 제1차 세계대전(~1918년) 전쟁 호황에 따라 산업계에서 염가의 노동력 확보를 위한 조선인 이입 요구가 고조 |
1915년 | 04월03일 | 조선여자친목회 결성('여자계『女子界』' 창간) |
1919년 | 02월08일 | 2·8 독립선언(재일조선인유학생이 도쿄 칸다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 선언문을 본국에 전달함) |
03월01일 | 3·1 독립운동(~1920년) 민족 차원의 독립 운동으로 발전 | |
04월15일 | 총독부 '조선인의 여행 제약에 관한 건'으로 일본으로의 도항을 제한(1922년 폐지) | |
1920년 | 조선산 쌀 증식 계획 개시 수리세(水利税), 토지의 겸병 등으로 자소작농 몰락, 유이민 속출 | |
1921년 | 07월28일 | 경시청 특별고등과에 '내선(内鮮) 고등계' 설치(그후 전국에 설치, 재일조선인이 치안의 대상이 됨) |
11월17일 | 내무성 '조선인의 경찰 조사에 관한 건'을 각 부현에 송부 | |
12월23일 | 소우아이카이(相愛会) 결성(박춘금=朴春琴, 이기동=李起東 등 대일협력자의 활동 시작됨) | |
1923년 | 02월 | 제주도와 오사카간 정기 항로 개설 '키미가요마루' 취항 |
05월01일 | 도쿄에서 메이데이, 다수의 조선인 검거됨 | |
09월01일 | 칸토대지진 조선인 폭동 유언으로 인심 불안해져 | |
09월02일 | 조선인 폭동을 이유로 계엄령 공포 군대, 경찰,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 시작됨 | |
09월03일 | 박열(朴烈), 카네코 후미코(金子文子) 검거(대역죄를 날조, 1926년 사형 판결, 이후 무기징역) | |
1924년 | 01월05일 | 김지섭(金祉燮) 히비야 니쥬바시에서 황궁에 폭탄 투척 (징역 20년형, 1928년2월20일 치바형무소에서 옥사) |
05월05일 | 오사카부 내선 쿄와카이 설립 조선인의 교화 선도를 목표로 함 (1925년 효고현, 1926년 카나가와현에도 설립, 점차 전국 조직이 됨) | |
1925년 | 02월22일 |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결성, 사회 노동 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함(1929년 12월 해체) |
04월22일 | 치안 유지법 공포, 조선에서는 치안 유지령 | |
10월 | 총독부 부산에서 일본 도항 제한 조치 | |
1927년 | 02월18일 | 조선인단체협의회 결성 신간회 도쿄(5월), 쿄토(6월), 오사카(12월), 나고야(1928년1월) 지회 결성 |
1928년 | 03월21일 | 재일본조선청년동맹 결성(1929년 해체) 기관지 '청년조선' 창간 |
1929년 | 08월03일 | 경찰서에 의한 '일시귀선증명서' 제도 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