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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의 연구자 강덕상―자이니치로서 일본 식민지사를 생각하다―』

  • 강덕상구술기록간행위원회 편
    산이치쇼보(三一書房), 2021년

    일제시대에 황국 소년으로 태어나, 훗날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세상에 알린 강덕상이 걸어온 반생. 역사연구자로서 자립하는 과정에 만난 은사와 친구들을 회상하며, 당사자인 일본인이 손대지 않던 일제시대 연구에 천착하여 문제를 환기한 재일 역사연구자들을 이야기한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초대 관장의 자서전.

『유언 -「사할린 귀환 재일한국인회」회장 이희팔(李羲八)이 전하고자 하는 것』

  • 녹취 : 나가사와 시게루(長澤 秀)
    산이치쇼보(三一書房), 2019년

    1946년에 시작된 사할린으로부터의 귀환, 그러나 대상은 일본인 뿐.
    일본인 부인의 배우자로서 일본으로 건너올 수 있었던 이희팔씨는 「사할린 귀환 재일한국인회」를 세웠다. 이윽고 국교가 없던 한국의 나이든 모친과 사할린 잔류 조선인 여성을 상봉하게 하려는 이희팔씨의 집념이 소련을 움직였다. 한국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한 민간인이 실현하여, 몇천 몇만 명이 그 뒤를 잇는 전례가 되었다.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든' 이희팔씨의 구술 기록과 관련자료집.

    이희팔(1923년 4월~2020년 9월)
    1923년 경상북도 영양군 출생. 1943년에 사할린 탄광에 동원되어, 계약만료 후인 1945년 5월에 현지징용되었다. 해방 후 사할린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으나, 일본인 여성의 배우자 자격으로 1958년에 도쿄로 건너와서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사할린 억류 귀환 한국인회」(지금의 사할린 귀환 재일한국인회)를 결성, 동포의 귀환과 가족과의 재회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한국인 전 BC급 전범의 호소 -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 이학래(李鶴来) 저
    나시노키샤(梨の木舎), 2016년

    전범이란 무엇인가. 22세의 청년은 싱가포르의 독방에서 사형 집행의 공포와 8개월 동안 마주하였다. 「일본인」으로서 재판받고 「외국인」으로서 원조 대상에서 제외된 부조리를 묻는다. 91세의 저자는 지금도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학래(1925년 3월~2021년 3월)
    1925년 전라남도 보성군 출생. 17살 때 일본군 군속인 포로감시원 모집에 응하여 버마 철도 건설에 동원된 포로를 감시했다. 패전 후에 전범으로 몰려 오스트레일리아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고, 후에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다. 「일본인」으로서 죄인이 되었음에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원조와 보상은 일체 받을 수 없었다. 1955년, 같은 처지의 한국·조선인 전 BC급 전범들과 함께 「동진회」를 결성. 이후 일본 정부에게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김천해 - 재일조선인 사회운동가의 생애』

  • 히구치 유이치(樋口雄一) 저
    샤카이효론샤(社会評論社), 2014년

    1950년대까지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재일조선인 사회운동가였으나, 지금은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김천해. 해방 전에는 재일조선인의 노동·사회운동에 관여, 1928년~45년 사이의 대부분을 옥중에서 지냈다. 해방 후에는 일본공산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 한국전쟁 직전에 북한으로 돌아갔다. 2012년 발견된 자전적 기록에 바탕하여 김천해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 실상을 그린다.

『백자의 화가 - 고상하고 강인한 오병학(呉炳学)의 세계』

  • 야마카와 슈헤이(山川修平) 저
    산이치쇼보(三一書房), 2013년

    고 하리우 이치로(針生一郎, 미술평론가)
    "나는 이토록 고상하고 강인한 그림을 그리는, 게다가 나보다 한 살 위인 재일 화가를, 이때까지 몰랐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제 치하의 조선에서 태어난 오병학.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의 가혹한 시련과 몇 번인가의 사선을 넘어 살아남은 것은, 그림에 대한 끝없는 정열이 있어서였다. 시대의 시련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이라는 예술과의 유대가 있어서였다. 재능이 집념을 지탱하고, 집념이 재능을 지켰다. 필자는 여러 우연이 겹쳐 화백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후로 이 강인한 화백의 편린이라도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강한 소망이 필자를 재촉했다. 이 책은 미력하나마 그 노력의 성과이다.

    오병학(1924년 1월~2021년 9월)
    1924년 평안남도 순천군 출생. 1942년에 화가를 지망하여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일. 1946년에 도쿄미술학교(지금의 도쿄예술대학)에 입학. 1968년에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 이후 일본 각지와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반쪽바리』

  • 김수용(金水龍) 저
    분게이샤(文芸社), 2011년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부모의 조국 한국에 간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반쪽바리'라는 증오에 찬 호칭이었다. 전시 하 동란의 나날을 씩씩하게 살아남은 소년의 모습을 그린 자전적 소설.

『내가 걸어 온 길』

  • 박병헌(朴炳憲) 저
    신칸샤(新幹社), 2011년

    '나의 인생 그 자체가 재일동포의 역사이자 한일 현대사다'

    일제시대, 12살 때(1939년)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저자는 8·15 해방후 건청, 한청동, 한학동, 민단 창립에 몸을 바쳐 6·25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
    일본에 돌아 온 후에도 한국민단과 함께 걸어나가며 지문 날인 거부 투쟁 와중에 민단 중앙 단장을 맡았다. 그 후 조국에서 기업해 실업가로서 성공을 거두고 후진 지도에 진력했다.
    본서는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살아 온 증언의 책이다.

『아다치에서 본 재일코리안 형성사 - 제주도·도쿄 아다치에서 산 나의 반세기』

  • 강철(姜徹) 저
    유잔카쿠(雄山閣), 2010년

    『재일조선·한국인사 종합연표』의 편저자로 알려진 강철씨의 자서전. 1942년 13살 때 제주도에서 아버지가 살고 있던 도쿄도 아다치구에 왔다. 해방후의 대학 진학, 민족 운동 참가, 병원 경영, 집필 활동 등 아다치에서 보낸 반세기에 걸친 재일코리안의 역사와 생활을 정리했다.

『고향은 어디 행복은 어디 - 한 재일조선인 2세의 반생』

  • 김종진(金宗鎮) 저
    코레카라출판(これから出版), 2009년

    나고야시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의 반생을 엮는다. 한 재일코리안이 걸어 온 험난한 여정의 기록인 동시에 보편적인 “시대의 기록”. 제5장「대화와 교류로」에서는 일본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중요한 지적들이 보인다.

『판소리에 뜻을 담을 때 - 어느 재일 가족의 발자취』

  • 오문자(呉文子) 저
    가쿠세이샤(学生社), 2007년

    '낙원'으로의 귀국 사업을 둘러싸고 아버지 남편과의 단절. 조선대학교 교원이었던 남편의 사임. 아들의 페루인 인질 사건과 딸의 돌연사. "그 때는 정말 '남·북과 일본 사이'에서 격동의 시대에 괴로워하며 발버둥치며 재일을 살아왔다"(오문자). 파란의 인생을 산 저자가 70년의 개인사를 통해 재일코리안과 일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재일조선인 한센병 회복자로 살아온 나의 80세에 건배』

  • 김태구(金泰九) 저
    세이운샤(星雲社), 2007년

    12세에 일본으로 건너와, 재일 생활 69년, 나가시마아이세이엔(長島愛生園) 생활 50여년. 인생의 대부분을 요양소에서 보냈다. 재일코리안으로서, 또한 한센병 환자로서 일본 사회의 편견·차별과 싸워 온 한 인간의 삶.

『사랑할 때 기적이 생긴다 -「재일 삼대사」』

  • 이야기 : 송부자(宋富子)
    산이치쇼보(三一書房), 2007년

    고려박물관 관장을 지내는 재일 2세 저자가 부모와 자신, 그리고 자녀에 이르기까지 3대의 삶을 전한 책. 중학교 졸업 후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귀화'만이 살 길이라고 고집한 나날이 있었다. 그런 저자가 많은 사람과 만나 민족과 인권에 눈을 뜨고 현재는 "고려박물관이 나의 생명"이라며 열정을 쏟고 있다.

『33주기 기념지 「오림준(呉林俊)」』

  • 오림준 33주기 실행위원회 편저, 2005년

    시인, 화가, 평론가였던 오림준의 33회기 기념지. 오림준은 19살 때 일본병으로 징병당해 해방후에는 조선학교 교사를 거쳐 미술과 시의 창작에 전념했다. 심근경색으로 48세에 급거한 오림준씨를 기려 2005년 부인 후쿠오카 미에(福岡美枝)씨가 발행했다. 재일사회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검은 양복만 입었다'는 오림준의 시, 유화, 지인들의 회고 등을 통해 재일조선인의 삶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바다를 건너 온 가족 그리고 먼 조국이여 』

  • 안순이(安順伊) 저
    헤키텐샤(碧天舎), 2004년

    8살 때 일본에 와 60살이 넘어서부터 다닌 문화센터의 에세이 교실에서 태어난 책. 탄광에서의 낙반 사고와 치바현 모바라시 비행장에서의 합숙 생활 등 가난에도 차별에도 지지 않은 강인함과 지혜를 전하고 있다. 제4회 '나의 이야기 - 일본 개인사 대상' 입선 작품.

『해협을 건넌 바이올린』

  • 이야기:진창현(陳昌鉉)
    카와데쇼보신샤(河出書房新社), 2002년

    14살 때 일본으로 건너와서 우연히 들은 바이올린의 음색에 매료되어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독학으로 습득, 세계에서 단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가 된 진창현. 그의 애수 어린 생애를 그린 논픽션.

『아버지의 이력서』

  • 김을성(金乙星) 저
    고베학생청년센터, 1997년

    조련 활동가였던 저자의 반생을 정리한 책. 17살 때 징병되어 중국 전선으로 보내졌다. 해방후에는 조련 활동에 임해 조련 해산 후에 북으로 밀항한다. 그러나 가족과 만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중국으로 탈출하여 다시 일본에 입국하였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남은 저자가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전하는 말이 가슴 따듯하게 한다.

『본명은 민족의 자긍심』

  • 김용해(金容海) 저
    미도리카와쇼보(碧川書房), 1966년(복각판)

    「이름은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첫걸음이다」
    오사카시 키타츠루하시소학교에서 20여 년에 걸쳐 민족학급을 담당해 온 저자는, 자긍심을 가지고 나아가기 위하여 본명 사용의 중요함을 제안한다. 재일 2세, 3세 교육의 과제를 고찰하며 민족학급의 현황과 앞날에 대해 논한다.

『나의 소년시대 - 차별 속에 살다』

  • 김달수(金達寿) 저
    포푸라샤(ポプラ社), 1982년

    10살 때 어머니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온 김달수 소년.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소학교에 다녀도 만족스럽게 공부하지 못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며, 언제나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당했다. 작가가 될 때까지의 고난의 길을 돌이켜보며, 재일조선인과 그에 마주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재확인한다.

『재일조선인 - 나의 청춘』

  • 박경식(朴慶植) 저
    산이치쇼보(三一書房), 1981년

    「8·15 이전의 내 인생은 실로 식민지 노예의 존재였기에, 그러한 민족적 주체성을 상실한 굴욕의 인생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경계하고자 굳이 책으로 정리해 보았다. 8·15 이후에 대해서도 다소 적었지만, 그것은 내가 조선인으로서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갈등, 프로세스이기도 하였다」(저자 후기)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의 저자 박경식이 이야기하는 “청춘의 기록”.